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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Jong Sup Kim – 부자의 언어 VS 빈자의 언어

<부자의 언어 VS 빈자의 언어>

테헤란로 건물주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벌써 5년도 넘은 일이지만 그날 일이 생생하다. 이른 나이에 IT 업계로 뛰어들어 큰 업적을 이루신 기업의 회장님이셨다. 미팅은 30분 정도로 짧았다. 미팅 장소는 빌딩의 회장실이었는데 창문 너머로 삼성동 현대백화점 옥상이 보였던 기억이 난다. 항상 테헤란로를 걸어 다녔는데 내겐 낯선 광경이었다.

비서의 배려로 회장실 소파에서 그분을 기다릴 수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커다란 풍채의 회장님이 등장하셨다. 악수의 힘도 남달랐다. 나도 손이 큰 편인데 내 손을 감싸고도 두 마디 정도 남는 손이었다. 그렇게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때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회장님의 언어였다. 같은 한국말이지만 부자들이 쓰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니 다른 언어를 쓰는 건 당연해 보였다.

기억에 남는 회장님의 언어는 이렇다.

<부자의 언어>

1.Why not?

주로 상대가 ‘안된다’라고 했을 때의 언어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이미 한계점을 정해 둔다. ‘그 일은 안될 거야’라는 가정하에 말한다. 부자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그 일이 안되냐고, 해보긴 했냐’라고 반문한다. 시도하기 전에 미리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2.No problem

부자들은 ‘문제 될 것 없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부자를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전진한다. 그 길 가운데 장애물을 만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다 보면 반드시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튀어나온다. 그 일은 안될 거라고 속삭인다. 부자들은 타인의 말에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빈자들은 남의 말에 휘둘리고 만다. 자기가 믿는 목표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는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은 결국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3. 일단 해봅시다.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나는 애플보다 나이키의 슬로건을 더 좋아한다. 광고회사라면 당연히 think different를 더 좋아하는 것이 정상이다. 다른 생각을 해야 하는 광고 회사가 just do it! 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해!’라는 말이 더 좋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시작도 못하고 그때를 놓치는 경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CEO들이 완벽하게 준비하고 일에 착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완벽한 준비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사업에서 타이밍은 돈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부자들은 ‘해보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뒷일은 뒤에 생각하고 일단 스타트하자는 의미다.

<빈자의 언어 >

1.Is it possible?

‘그게 가능한가요?’라는 말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빈자는 늘 남에게 묻는다. 그리고 가능성을 의심한다. ‘이게 되나?’ ‘될 리가 있나?’ ‘안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쯤 되면 누군가 와서 ‘응 안돼’라고 말해주는 게 맞지 않나 싶다.

2.not enough time

‘시간이 없어요’라는 말은 빈자의 언어이다. 부자는 시간을 창출해낸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데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부자는 아침에 2시간 일찍 일어나서 그 시간을 확보한다. 하루를 2시간 더 살면 한 달이면 남들보다 이틀 정도의 시간을 더 선물 받는 셈이다. 빈자는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면서 더 나은 내일을 바란다. 반면, 부자는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더 좋은 내일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3. 다음에 할게요.

‘다음’이라는 말만큼 쉬운 말이 있을까? 동시에 그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다. ‘다음에 할게요’ ‘아쉽지만 다음에 비용 더 드릴게요’ 등 우리는 다음이라는 말을 남발하며 산다. 그리고 그다음은 영영 오지 않는다.

부자는 일단 지금 당장 해보자고 말하고 빈자는 다음에 하자고 한다. 지금 시도해보면 시행착오를 알 수 있다. 다음에 해보면 무슨 장애물이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실패 할리가 없다.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부자는 시도하고 실패하고를 반복하면 더 위대한 목표를 이루어 간다.

[좋은 글] 두 가지 부류의 대학원생

두 가지 부류의 대학원생:
앎이 삶을 구원하는 대학원생과
삶이 앎을 구원하는 대학원생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지만
그래도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거나
공부를 더 파고들어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몇 몇 학생들이 대학원의 문을 두드린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해
중간 거점 생각지대로 대학원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없지 않다.

그런데 정말 대학원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현장 체험을 먼저 하고 나서
절박한 인식의 위기를 느낀 학생들이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온 대학원 입학 지각생들이다.

이들은 앎이 삶을 구원하기보다
삶이 앎을 구원하는 학생들이다.

절박한 현실적 필요성과 위기의식이
앎을 따라가다 자기만의 체험적 깨달음으로 무장하는
공부하는 직장인인 경우도 있고
앎과 삶이 구분되지 않은 채 온몸을 던져
삶의 최전선에서 앎을 밥먹듯이 먹고 사는
프로 대학원생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현실적 위기의식을
몸소 체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책상에서 공부하며
나름대로의 앎의 욕구에 대한 미충족된 부분을
채워가면서 나름대로의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앎에 비추어 삶을 생각하고 판단한다.

삶이 앎을 구원하는 치열한 대학원생들의 논문은
그 사람의 체험적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이 녹아있다.

논문에 사용하는 개념이 다르고 풀어나가는 논리가 다르다.
이 친구에게 논문은 졸업하기 위한 학위논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갈급했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논문을 쓰는 과정과 자세도 치열하고 처절하다.

지도교수가 이런 친구들에게 할 일은 가끔 더 불타오르도록 기름을 붓거나
더 난이도가 높은 연구과제를 던져주고나
아니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논문을 읽어보게 하는 일 뿐이다.

또 다른 대학원생들은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 들어왔거나
누군가 가자고 해서 부화뇌동으로 따라들어왔거나
그저 고학년 자격증을 따서 좀 더 나은 취업을 위한
수단적 과정으로 생각하는 대학원들이다.

이들에게 논문은 졸업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문제의식도 위기의식도 없다.
그저 선배들이 쓴 논문 중에 몇 개를 선택,
주제와 대상을 약간 바꿔서 적당히 편집해서
최소한의 졸업요건을 갖추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이런 논문을 수십편 읽다보면 갑자기 시간낭비라는 생각과 함께
참으로 한심한 대학원생과 대학원이라는 자성이 든다.

왜 이 연구를 하는지 문제의식도 확연하지 않다.
오로지 졸업하기 위해서 연구를 한다.
판에 박은 듯 주제와 연구문제, 그리고 펼치는 논리도 천편일률적이다.
대부분의 논문 제목은 이렇다.
“~가 ~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뭐가 뭐에 미치는 영향이기에
뭐가 아닌 다른 뭐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을 갖지 말아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런 논문을 계속 읽으면 미치겠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나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논문이
지금도 대학원에서 대량 양산되고 있다.

대학원(大學院)은 대학(大學)과 한 글 자 차이다.
그 한 글자가 바로 ‘원(院)’이다.
나는 그 한 글자 차이가 바로
자기 생각과 관점으로 자신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다양한 개념을 활용하여 자기 주장을 본격적으로 쓰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틀에 박힌 개념을 사용하면 틀에 박힌 논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제와 다른 개념, 다른 사람의 개념이지만 나의 문제의식으로 재정립했거나
재해석한 개념으로 남의 주장을 나의 체험과 생각으로
다시 녹여내면서 글을 쓸 때 비로소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제목만 봐도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 갈 것 같고
목차만 봐도 읽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며
사용하고 개념만 봐도 엄청난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록 학위논문이라고 해도 달려들어 읽고 싶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위 논문은 사용하는 개념부터 틀에 박혀 있다.
그만큼 경계를 넘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석사는 베끼고(copy) 박사는 훔친다(steal).
석사는 가까이서 베끼고 박사는 멀리서 훔친다.
모든 창조는 표절이다. 다만 들키지 않은 표절이다.
일리엄 랠프 윙의 말이다.
창조는 어제와 다르게 표절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절하기 위해서는
다른 문제의식으로 같은 내용이라도 다르게 해석하거나
전혀 다른 내용을 끌고 와서 색다른 목적의식으로 재편집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석박사 논문은 다 그런거는 아니겠지만
누가봐도 어디서 베꼈는지를 알 수 있는 표절 그 자체다.

공부든 일이든 참을 수 없는 문제의식과 지적 분개,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집요한 탐구심으로 무장한 사람이
그저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열정적으로 몰입할 때
생각지도 못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공부가 목적이고 삶이 내 전부일 때
앎과 삶은 같이 돌아가는 한 몸이다.
공부가 수단이 될 때
앎은 피폐해지고
삶도 덩달아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실종된다.

[좋은 글]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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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국원

코넬 대학교 조교수 (School of Electrical and Computer Engineering)
코넬한인교회 교인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B.S.)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S.M., Ph.D., Electrical Engineering and Computer Science)

 

“God loves you. God is always with you. God has a fantastic plan for your life. You can do anything that God wants you to do.”

아이들이 말을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제가 두 아이들에게 매일 들려주는 말 중에 일부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아가고, 또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가 학교 종신제 (tenure) 심사와 관련해서 스트레스 받아 하고 있을 때, 4살 짜리 딸 아이가 아빠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제가 매일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지만, 정작 내 삶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보면 그 당시에 제 생각과는 달랐지만, 오히려 저에게는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다시 감사하게 됩니다. 또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특별히 이룬 것도 없고 신앙도 어린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

대학 때 교회를 다니면서 저에게 있었던 한 가지 고민은 과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제가 전공하던 컴퓨터는 하나님의 일에 직접적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였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갖고 계신 궁긍적인 비전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으면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갖고 기도하면서 제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미가 6장6절-8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제가 원했던 것은 세상에서 보일 수 있는 업적에 대한 꿈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옮바른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약한 점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저의 첫 번째 비전은 어떤 일을 이루는 것 보다는 삶에서 하나님과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지난 길을 돌아보면 저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왔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때에 맞게 저를 훈련시키시고 또 세상에서도 제가 생각지 못했던 길들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통해서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유학

유학과 직장을 정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순탄하기만 한 길보다는 조금은 어려움이 함께하는 길로 돌아가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주신 꿈들을 이루어 주셨지만 제 나름대로 세운 계획과 욕심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히려 그 어려움들이 제 잘못들을 돌아보고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또 각각의 시기에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말씀을 주셨던 것도 감사하게 됩니다.

대학 졸업이 다가오면서 전공을 더 공부하려는 생각과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유학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과에서 저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도 있었고 또 그 당시 저희 가정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어서 원하는 대로 유학을 갈 수 있을지는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 생각한 길은 다른 선배들과 친구들 처럼 장학재단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장학 재단의 합격자 발표가 있기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43장의 말씀과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 이야기를 마음에 주셨습니다.

이사야 43장 18절-21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저에게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려움을 주시겠지만, 그 가운데에 길을 내 주시고, 또 그 일들을 통해서 영광 받아주시겠다는 약속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저의 계획과는 달리 장학생 선발에는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학재단의 도움 없이 유학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제가 제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또 좀 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제 계획과 욕심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또한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저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 보다도 많은 학교들에서 입학 허가를 받게 해 주셨고, 또 장학금 없이도 일단 유학을 시작할 수 있는 재정적 상황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첫 학기에 좋은 지도 교수님을 만나게 하셔서 학교 연구비 지원을 통해서 전혀 개인적인 재정 부담 없이 박사 학위를 마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돌아보면 그냥 제 계획대로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간 것 보다 훨씬 좋은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음을 믿고 기쁨으로 학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직장

재미있게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으로 교수 자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대학원 때와 비슷하게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도 다시 요한복음 11장을 읽게 하시고 이사야서 43장의 약속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박사 과정을 마무리 하면서 나름대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미국에 있는 학교들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계획과는 달리 제가 지원했던 학교들에서 다 떨어지게 되었고 일단 지도 교수님이 관련된 회사에서 직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반드시 제가 원하는 학교들에 자리를 얻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학교 이외의 길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저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주셨고, 제가 왜 교수라는 직업을 하려하는지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제 마음 가운데 진정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 보다 명예와 안락함에 대한 욕심이 더 먼저였던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 그 기간 동안 아내와 가정도 이루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다시 교수 자리를 알아보았을 때에는 좋은 학교들에 자리를 허락해 주시고,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고 그를 통해서 영광 받으신다는 약속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코넬 대학에서의 5년 반

대학에서 교수로서의 일을 시작하면서 저에게 있었던 가장 큰 결정은 어떤 학교로 가야하는지의 문제였습니다. 앞으로 상당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기에 결정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처음 저와 제 아내는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 더 상황이 좋은 것 같았던 학교로 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코넬에 비해 더 큰 학교였고, 큰 도시와 교회, 주위에 제 분야 회사들도 많이 있는 등 더 나은 선택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일을 진행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코넬이 제 아내와 제가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셨고, 또 저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말씀을 통해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더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한 만큼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어야 마땅하겠지만, 사실 지난 5년 반 동안 코넬에서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면 저와 제 가족에게는 축복과 동시에 광야와 같은 훈련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2-3년 동안 연구에서 생각만큼 결과가 없으면서 재임용과 종신제 (tenure) 심사에 대한 부담이 계속되었고 (저희 학교에서는 임용 후 3년 그리고 5년 후에 심사를 통해서 실적이 부족한 경우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축복으로 허락하신 두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혼자 사는 것에 익숙했던 저와 아내에게는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과정을 통해서 저희가 조금이나마 하나님 앞에 더 다듬어지고 또 가족으로 더 단단하게 하나가 된 것을 보며 감사하게 됩니다. 특히 제 앞 길에 대해서 하나님께 더 믿고 맡기는 것을 연습하는 기회였고, 또 개인 중심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있던 저에게 아내와 두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저희를 코넬로 인도해 주신 과정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하나님께서 종신제 (tenure) 심사도 순조롭게 진행되게 하셔서 미래에 대한 부담도 덜어 주셨습니다.

앞을 바라보며… 교회에 대한 약속

학교와 자녀들로 인한 훈련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님께서 저의 삶의 다음 단계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어려움을 통해서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을 좀 더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담임 목사님께서 재신임 문제로 떠나시고, 두 분 부목사님께서 일부 성도님들과 함께 떠나 새로운 교회를 만드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교회의 분열을 경험하면서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욥기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이 말씀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에 계획을 갖고 계시고, 어려움을 통해서 오히려 부족한 것들을 더 깨끗하게 하셔서 더 크게 사용하시겠다는 약속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저희 교회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일어난 일을 보면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보며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대로 앞으로는 어떤 일들을 이루어 나가실지 기대하게 됩니다.

갑자기 담임목사님이 떠나게 되셨을 때 김창길 목사님을 임시 담임목사님으로 보내주셔서 교회가 큰 혼란 없이 진행될 수 있게 하셨고, 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던 제 생각과는 달리 빠른 시간 내에 하홍표 목사님이 새 담임목사님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지금까지 눈에 보이게 일하지 않으셨던 분들로 빈 자리들을 채워주시고 오히려 더 하나되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바쁜 생활 가운데에서도 매일 새벽에 기도하며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며 제 모습도 다시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고 제 삶의 한 순간마다 인도해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제 삶 속에서 ‘광야의 길과 사막의 강’을 내셔서 영광을 받으실지 또 저희 교회를 어떻게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실지 기대하게 됩니다. 제가 제 뜻 대로 하나님을 움직여 가려고 하지 않고 온전하게 하나님께 제 길을 맡기고 겸손하게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http://www.pamvoice.org/main/product.php?pid=746

[좋은 글] 성경 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2)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1)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거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7-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랴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은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허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7-18)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 (요한삼서 1:2)

[좋은 글] 한미은행장이 아들에게 쓴 편지

한미은행장이 아들에게 쓴 편지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 하고는 동업하지 말거라.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 아이들을 많이 만들어 놓거라.
안 그랬다면 그 중에 하나 둘은 말도 붙이기 어려울 만큼 예쁜 아가씨로 자랄 것이다.

목욕할 때에는 다리 사이와 겨드랑이를 깨끗이 씻거라.
치질과 냄새로 고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거든,
주방장에게 간단한 메모로 칭찬을 전해라.
주방장은 자기 직업을 행복해 할 것이고,
너는 항상 좋은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좋은 글을 만나거든 반드시 추천을 하거라.
너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해진다.

여자아이들에게 짓궂게 하지 말거라.
신사는 어린 여자나 나이든 여자나 다 좋아한단다.

양치질을 거르면 안된다.
하지만 빡빡 닦지 말거라.
평생 즐거움의 반은 먹는 것에 있단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친구가 너를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아내가 즐거워할 것이다.

하느님을 찾아 보거라.
만약 시간의 역사(호킨스), 노자(김용옥 해설),
요한복음(요한)을 이해한다면,
서른 살을 넘어서면 스스로 서게 될 것이다.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너무 예의바른 사람을 집에 초대하지 말거라.
굳이 일부러 피곤함을 만들 필요는 없단다.

똥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누거라.
일주일만 억지로 해보면 평생 배 속이 편하고,
밖에 나가 창피당하는 일이 없다.

가까운 친구라도 남의 말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속을 보이지 마라.
그 사람이 바로 내 흉을 보고 다닌 사람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도 청춘만큼이나 재미있단다.
그러니 겁먹지 말거라.
사실 청춘은 청춘 그 자체 빼고는 다 별거 아니란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어주거라.
엄마는 기분이 좋아지고,
여자친구 엄마는 널 사위로 맞이하며, 네 아내는 행복해 할 것이다.

양말은 반드시 펴서 세탁기에 넣어라.
소파 밑에서 도너츠가 된 양말을 흔드는
사나운 아내를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네가 지금 하는 결정이 당장 행복한 것인지
앞으로도 행복할 것인지를 생각하라.
법과 도덕을 지키는 것은
막상 해보면 그게 더 편하단다.

돈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말거라. 돈에 눈이 멀어진다.
돈을 너무 멀리 하지 말거라.
너의 처자식이 다른 이에게 천대받는다.
돈이 모자라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해서 사용해라.

너는 항상 내 아내를 사랑해라.
그러면 네 아내가 내 아내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으면
최소한 세 명의 의사 진단을 받아라.
생명에 관한 문제에 게으르거나, 돈을 절약할 생각은 말아라.

5년 이상 쓸 물건이라면,
너의 경제능력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사거라.
결과적으로 그것이 절약하는 것이다.

베개와 침대와 이불은 가장 좋은 것을 사거라.
숙면은 숙변과 더불어 건강에 가장 중요한 문제다.

너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친구가 되거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것 같으면 아버지를 택해라.
친구는 너 말고도 많겠지만, 아버지는 너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줌을 눌 때에는 바짝 다가 서거라.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될 것이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락이 거의 없던 이가 찾아와 친한 척하면
돈을 빌리기 위한 것이다.
분명하게 ‘노’라고 말해라.
돈도 잃고 마음도 상한다.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면
되돌려 받지 않아도 될,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다 해줘라.
그러나 먼저 네 형제나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해줬나 생각하거라.

네 자녀를 키우면서 효도를 기대하지 말아라.
나도 너를 키우며,
너 웃으며 자란 모습으로 벌써 다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