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두 가지 부류의 대학원생

두 가지 부류의 대학원생:
앎이 삶을 구원하는 대학원생과
삶이 앎을 구원하는 대학원생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지만
그래도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거나
공부를 더 파고들어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몇 몇 학생들이 대학원의 문을 두드린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해
중간 거점 생각지대로 대학원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없지 않다.

그런데 정말 대학원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현장 체험을 먼저 하고 나서
절박한 인식의 위기를 느낀 학생들이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온 대학원 입학 지각생들이다.

이들은 앎이 삶을 구원하기보다
삶이 앎을 구원하는 학생들이다.

절박한 현실적 필요성과 위기의식이
앎을 따라가다 자기만의 체험적 깨달음으로 무장하는
공부하는 직장인인 경우도 있고
앎과 삶이 구분되지 않은 채 온몸을 던져
삶의 최전선에서 앎을 밥먹듯이 먹고 사는
프로 대학원생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현실적 위기의식을
몸소 체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책상에서 공부하며
나름대로의 앎의 욕구에 대한 미충족된 부분을
채워가면서 나름대로의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앎에 비추어 삶을 생각하고 판단한다.

삶이 앎을 구원하는 치열한 대학원생들의 논문은
그 사람의 체험적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이 녹아있다.

논문에 사용하는 개념이 다르고 풀어나가는 논리가 다르다.
이 친구에게 논문은 졸업하기 위한 학위논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갈급했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논문을 쓰는 과정과 자세도 치열하고 처절하다.

지도교수가 이런 친구들에게 할 일은 가끔 더 불타오르도록 기름을 붓거나
더 난이도가 높은 연구과제를 던져주고나
아니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논문을 읽어보게 하는 일 뿐이다.

또 다른 대학원생들은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 들어왔거나
누군가 가자고 해서 부화뇌동으로 따라들어왔거나
그저 고학년 자격증을 따서 좀 더 나은 취업을 위한
수단적 과정으로 생각하는 대학원들이다.

이들에게 논문은 졸업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문제의식도 위기의식도 없다.
그저 선배들이 쓴 논문 중에 몇 개를 선택,
주제와 대상을 약간 바꿔서 적당히 편집해서
최소한의 졸업요건을 갖추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이런 논문을 수십편 읽다보면 갑자기 시간낭비라는 생각과 함께
참으로 한심한 대학원생과 대학원이라는 자성이 든다.

왜 이 연구를 하는지 문제의식도 확연하지 않다.
오로지 졸업하기 위해서 연구를 한다.
판에 박은 듯 주제와 연구문제, 그리고 펼치는 논리도 천편일률적이다.
대부분의 논문 제목은 이렇다.
“~가 ~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뭐가 뭐에 미치는 영향이기에
뭐가 아닌 다른 뭐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을 갖지 말아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런 논문을 계속 읽으면 미치겠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나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논문이
지금도 대학원에서 대량 양산되고 있다.

대학원(大學院)은 대학(大學)과 한 글 자 차이다.
그 한 글자가 바로 ‘원(院)’이다.
나는 그 한 글자 차이가 바로
자기 생각과 관점으로 자신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다양한 개념을 활용하여 자기 주장을 본격적으로 쓰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틀에 박힌 개념을 사용하면 틀에 박힌 논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제와 다른 개념, 다른 사람의 개념이지만 나의 문제의식으로 재정립했거나
재해석한 개념으로 남의 주장을 나의 체험과 생각으로
다시 녹여내면서 글을 쓸 때 비로소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제목만 봐도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 갈 것 같고
목차만 봐도 읽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며
사용하고 개념만 봐도 엄청난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록 학위논문이라고 해도 달려들어 읽고 싶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위 논문은 사용하는 개념부터 틀에 박혀 있다.
그만큼 경계를 넘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석사는 베끼고(copy) 박사는 훔친다(steal).
석사는 가까이서 베끼고 박사는 멀리서 훔친다.
모든 창조는 표절이다. 다만 들키지 않은 표절이다.
일리엄 랠프 윙의 말이다.
창조는 어제와 다르게 표절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절하기 위해서는
다른 문제의식으로 같은 내용이라도 다르게 해석하거나
전혀 다른 내용을 끌고 와서 색다른 목적의식으로 재편집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석박사 논문은 다 그런거는 아니겠지만
누가봐도 어디서 베꼈는지를 알 수 있는 표절 그 자체다.

공부든 일이든 참을 수 없는 문제의식과 지적 분개,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집요한 탐구심으로 무장한 사람이
그저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열정적으로 몰입할 때
생각지도 못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공부가 목적이고 삶이 내 전부일 때
앎과 삶은 같이 돌아가는 한 몸이다.
공부가 수단이 될 때
앎은 피폐해지고
삶도 덩달아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실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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